‘수출 철회 요청’ 여부 놓고 진흙탕 싸움 빠진 한·일 양자협의…속내 들여다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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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 철회 요청’ 여부 놓고 진흙탕 싸움 빠진 한·일 양자협의…속내 들여다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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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정부 “한국 측 철회 요구 없었다”
韓 실무진 “사실과 다르다” 반박에 日 정부 재반박
WTO 등 국제사회 시선 의식한 전략으로 읽혀
‘화이트 리스트’ 배제 가능성도 더 높아져

한·일 양국의 첫 실무진급 양자 협의가 ‘진실 공방’이라는 진흙탕 싸움에 빠졌다. 한국 정부는 일본에 수출 제한 조치 철회를 요청했다고 밝혔지만 일본 정부는 ‘그런 적 없다’며 맞서고 있다.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 실무진들의 기자회견에 “회의 내용을 외부에 알렸다”며 항의하는 희극도 펼쳐졌다. 해당 기자회견은 일본 정부의 발표에 반박하는 내용으로 ‘사실과 다르다’는 설명 수준이었다.

회의록 자체가 비공개인 상황이어서 주장의 진위를 명백히 판가름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일본 정부의 여론전 저변에는 국제사회를 의식하는 시선이 깔려 있다. 한국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 분쟁 해결 절차 제소 이전에 갈등을 해결하려 노력했다는 기록을 남기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화이트 리스트’ 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선회할 가능성도 낮아졌다. WTO를 통한 분쟁 해결을 피하기 힘들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12일 오후 일본 도쿄에서 개최된 한·일 통상당국 양자 협의가 진실 공방의 발단이다. 과장급 실무진들이 좁은 회의실에서 일본 수출 제한 조치를 주제로 4시간여 동안 비공개 협의를 가졌다. 한국 정부는 협의 결과를 보도자료와 같은 서면으로 남길 수 없다는 일본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양국 정부가 각각 협의 결과를 기자들에게 브리핑하는 선에서 합의가 이뤄졌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브리핑 내용이 논란을 촉발했다. 일본 경제산업성 간부급 관계자는 브리핑을 통해 “한국 측에서 (수출 규제) 철회를 요구하는 발언은 없었다”고 전했다. 회의에 참석한 전찬수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안보과장과 한철희 산업부 동북아통상과장은 일본 측의 발표가 사실과 다르다며 곧바로 반박하고 나섰다. 이들은 지난 13일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출국 직전 기자회견을 갖고 “우리는 일본 측 조치에 유감을 표명했고 철회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발언이 나온 뒤 일본 경제산업성도 13일 기자회견을 갖고 “재차 회의록을 확인했다”며 “철회를 요구했다는 명쾌한 발언은 없었다”고 재반박했다. 한국 정부가 회의 내용을 외부에 알려 신뢰를 훼손했다며 주일 한국대사관을 통해 항의했다고도 덧붙였다.

양국 정부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이번 협의가 협상 기록으로 남는다는 점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이번 사안을 WTO에 제소할 방침이다. WTO 분쟁 해결 절차 첫 단계인 양국 간 협의가 무산되면 3명의 통상 전문가가 참여하는 패널이 구성된다. 이들은 양국 보고서를 토대로 심리를 진행한다. 이와는 별개로 오는 23~24일 WTO 최고 기관인 일반이사회에서도 일본의 수출 규제 안건이 다뤄진다. 한국이 적극적으로 분쟁 해결에 나섰다는 기록은 심리나 회의에서 한국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일본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기록을 남기고 싶을 리 없다.

‘철회 요청’ 한 줄을 놓고도 극과 극의 입장차를 보인 점을 보면 향후 한국의 화이트 리스트 배제 조치가 현실화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화이트 리스트란 안보 상 수출 우호국으로 전략물자 수출 편의를 봐 주는 국가를 말한다. 한국은 2004년부터 화이트 리스트에 등재돼 반도체 소재 등 1112개의 일본산 전략 물자 수입을 원활하게 진행해왔다. 일본은 오는 24일까지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 의견 수렴 후 한국을 제외한다는 입장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14일 “그 이전에 일본 정부와 협의 노력을 더욱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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