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사람들 다 아는 원룸 공용 비번…안전 취약지대 원룸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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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 다 아는 원룸 공용 비번…안전 취약지대 원룸촌

최근 두 달 새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혼자 사는 여성을 노린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지난해 7월 기준 서울에서 1인 가구 비중이 53%로 가장 많은 관악구, 그 중에서도 원룸이 밀집해 있는 신림동 봉천동 대학동 일대를 기자가 14일 둘러봤다. 이 곳에 사는 여성들은 “언제 또 벌어질지 모르는 성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기분”이라고 불안해 했다.

신림동 원룸촌은 휴일 대낮인데도 오가는 사람 없이 적막했다. 골목 모퉁이에서 마주친 한 여성은 말을 걸려 하자 모자를 푹 눌러쓰고 눈길을 피한 채 발걸음을 옮겼다. 봉천동 관악경찰서 입구 맞은 편에 위치한 한 원룸은 2년 전 지어진 신축 건물이다. 건물 공동현관 앞 우편함에 검은 매직으로 적힌 숫자 4개가 적혀있었다.
신림동의 또다른 원룸 건물 외벽에도 5자리로 된 숫자가 네 개 쓰여 있었는데, 가장 마지막 것이 비밀번호였다. 무더운 날씨 때문인지 공동현관을 아예 열어놓은 곳도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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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룸에 사는 정모(27)씨는 “혼자 살고 있어 늘 불안한데 건물에 아무나 드나들 수 있다는 사실이 끔찍할 만큼 무섭다”고 말했다. 이 지역에서 배달 일을 하는 강모(41)씨는 “원룸의 경우 빠른 배달을 위해 배달원끼리 비밀번호를 공유하기도 한다”며 “주기적으로 바꾸는 곳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이 훨씬 많다”고 말했다.

원룸 건물 대다수는 외벽에 가스 배관이 노출돼 있었다. 성인 남성이 마음만 먹으면 타고 올라가 창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구조다. 지난 11일 신림동에서 혼자 사는 여성의 집에 침입한 남성 역시 건물 밖에 세워진 승합차를 발판 삼아 2층 화장실 창문으로 들어간 것으로 파악됐다. 이 남성은 범행 이틀 만인 13일 경기도 과천 경마장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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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룸 건물의 출입구와 엘리베이터 앞에는 대부분 CCTV가 설치돼 있지만 오래된 건물에는 CCTV가 없거나 골목골목 이어지는 곳에는 사각지대도 눈에 띄었다. 3년째 대학동 원룸에서 살고 있는 손모(26)씨는 “경찰이 창문에 경보기를 달라고 하는데, 누군가 창문을 깨고 들어오면 무용지물 아니냐”며 “늦은 밤 바람 소리에 창문이 조금만 흔들려도 잠을 깰 만큼 신경이 쓰인다”고 말했다. 한 공인중개사는 “CCTV와 무인택배함을 갖춘 곳은 월세 또는 관리비가 최대 10만원가량 비싸다”며 “원룸을 찾는 사회초년생이나 취업준비생 입장에서는 적지 않은 금액”이라고 말했다.

이렇듯 방범이 취약한 주거 지역에서 혼자 사는 여성을 집 앞까지 쫓아가는 일이 벌어져도 적용 가능한 혐의는 형법상 주거침입죄 정도다. 지난 12일 서울 송파구에서 처음 본 여성의 집 현관까지 따라 간 서울 시내 모 경찰서 소속 실습생 A씨에게도 같은 혐의가 적용됐다. 앞서 광진구에서 지인 소개로 만난 여성이 마음에 든다며 집 앞까지 쫓아간 20대 남성도 주거침입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문제는 현실에선 주거침입죄마저 묻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경찰에 따르면 가해자가 집 안까지 따라 들어왔다는 명백한 증거가 없으면 경범죄처벌법에 따라 ‘불안감 조성’ ‘지속적 괴롭힘’으로 분류, 몇 만원 수준의 벌금만 물면 된다.

경찰 관계자는 “혼자 사는 여성을 쫓아가는 범죄가 성폭행 등 강력 범죄로 이어질 소지가 크지만, 따라간 데 그친다면 피해를 입증하기 어렵다”며 “법과 현실이 괴리돼 있는 대표적 사례”라고 말했다. 신이철 원광디지털대 경찰학 교수는 “범행 의도를 파악해야 혐의를 특정할 수 있기 때문에 경찰의 증거 수집 여부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황윤태 조민아 기자 trul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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