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핑 룸’에 ‘베이핑 카페’까지… 규제 피해가는 전자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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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핑 룸’에 ‘베이핑 카페’까지… 규제 피해가는 전자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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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담배 전용 흡연 공간인 ‘베이핑 룸(Vaping room)’과 ‘베이핑 카페’가 잇따라 생겨나고 있다. 담배회사들은 이곳을 통해 ‘전자담배를 피우는 베이핑과 궐련을 피우는 스모킹은 다르다’고 강조한다. 전자담배 사용을 유도하는 마케팅 전략이다. 교묘한 상술이지만 이를 저지할 규제책은 마땅치 않아 정부가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자담배 ‘아이코스’ 제조사인 한국필립모리스는 최근 커피빈 서울 강남 지역 매장 2곳에 전자담배 전용 공간 베이핑 룸을 설치했다. 필립모리스는 이미 전국 대형 사업장과 사무실, 공동주택 등 50여곳에 베이핑 룸을 마련했다. ‘담배연기 없는 세상(Smoke-Free World)’을 만들어 간접흡연을 막겠다는 취지인데 실질적으로는 일반담배와 차별화를 통해 전자담배 사용자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필립모리스의 베이핑 룸은 흡연실로 인지하기 어렵게 만들어졌다. 베이핑 룸에는 ‘No Smoking’이란 문구와 함께 금연구역 표시가 붙어 있다. 서울 잠실역 인근 베이핑 룸을 이용했다는 한 전자담배 흡연자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여긴 전자담배 전용 구역이어서 궐련형(담배)은 들어오면 안 된다”는 글을 올렸다.

커피빈에 마련된 베이핑 룸은 일반담배 흡연실과 나란히 붙어 있어 대비 효과가 크다. 커피빈 강남역먹자골목점 베이핑 룸을 이용한 40대 여성 김모씨는 13일 “전자담배는 냄새가 몸에 배이지 않기 때문에 전자담배 흡연자와 일반담배 흡연자는 다르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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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핑 카페도 전자담배 흡연자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이곳은 특히 비흡연자도 갈 수 있는 곳으로 홍보된다. 강남구 논현동의 한 베이핑 카페 관계자는 “흡연 여부와 상관없이 커피를 마시며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가 베이핑 룸과 베이핑 카페를 규제하기는 쉽지 않다. 보건복지부가 지난달 21일 “2025년까지 모든 실내에서 흡연을 금지하고 실내흡연실도 폐쇄한다”고 밝혔지만 이는 법을 고쳐야 할 사안이다. 현재로서 베이핑 룸 설치는 합법이다.

베이핑 카페도 현실적으로 단속하기 어렵다. 현행법이 담배를 연초의 ‘잎’을 원료로 한 것에 한정하고 있어서 담배 줄기나 뿌리에서 추출한 니코틴이나 화학합성 니코틴으로 제조한 액상형 전자담배를 사용하면 단속 대상이 아니다. 담배의 범위를 확장하는 내용의 법안은 국회에 계류돼 있다.

복지부는 베이핑 룸을 규제할 수 있을지 살펴본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지침을 통해 홍보 목적으로 실내흡연실을 설치하는 걸 금지하고 있는데, 베이핑 룸이 홍보 목적에 해당하는지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베이핑 룸이 국민건강증진법에서 규정하는 담배 광고에 해당할 수 있는지 법률 자문을 요청한 상태”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좀 더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기헌 분당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정부 정책이 담배회사의 마케팅을 못 따라가고, 담배회사 마케팅으로 인해 흡연자의 인식이 무언 중에 바뀌고 있다”며 “니코틴 사용 자체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조홍준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실내흡연실을 가능하게 한 것부터 잘못 됐다”며 “흡연실 폐쇄도 (면적에 따라) 단계적으로 할 게 아니라 일괄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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