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조민영] 기소하지 않을 권한

사이트 내 전체검색
 

[세상만사-조민영] 기소하지 않을 권한

201906140404_11170924083498_1.jpg
30_1.jpg


법조 기자 생활을 하다 보면 수사기관의 사건 처리에 문제를 제기하는 제보를 받는 경우가 있다. 개인적 민원과 제보의 경계에 있는 사안이 많지만, 대체로 관통하는 건 ‘억울함’이다. 흥미로운 것은 검찰의 부당한 수사를 받아 억울한 처지에 이르렀다는 호소보다 검사님들이 ‘나쁜 놈’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봐줘서 억울하니 다시 수사해 달라는 식의 호소가 훨씬 많다는 것이다.

왜일까 생각해보면 검찰의 진짜 힘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다. 통상 ‘힘센 검사’를 생각하면 누군가를 수사해 세게 처벌하는 모습을 떠올리지만, 진짜 막강한 권한은 누군가를 수사한 끝에 처벌하지 않는 데 있다.

검찰이 수사를 해서 세게 처벌해야 한다며 재판에 넘긴 경우 일단 법원의 공판이 남아 있다. 공판이란 공개된 재판이다. 변호인의 조력을 받아 이 재판 과정에서 억울함을 호소하고 다투는 것이 공개적으로 이뤄진다. 검사의 의도적 잘못이나 수사상의 오류가 있다면 그 과정에서 드러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검사가 기소하지 않은 사건은 외부에서 확인하거나 들여다볼 기회를 갖기 어렵다. 당사자가 항고해 재기수사 등을 요청할 수 있지만, 다시 검찰의 판단을 받는 절차라서 외부 견제 장치로 보긴 어렵다. 특별검사가 도입돼 수사하는 건 정치적 관심사가 됐을 때나 해당한다. 불기소 처분은 이처럼 검찰이 사실상 최종 판단을 내리는 영역에 속한다. 검찰을 믿는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런 불기소 처분을 놓고 검찰을 의심하게 되는 일이 계속되는데, 이를 바로잡는 과정은 반대의 경우보다 훨씬 진통이 크다는 점이다. 최근 활동을 종료한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들여다본 사건들이 대표적 사례다. 박종철 고문치사나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등 과도하거나 잘못된 수사로 피해를 입은 사례들은 비교적 결론도 명확하고 검찰의 사과 등 조치도 빠르게 이뤄졌다. 반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이나 장자연 리스트 사건 등은 대통령이 나서서 철저한 재조사를 요구했을 정도로 의혹이 크게 제기됐지만 뒷마무리를 놓고도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공통점은 과거 사건이 발생했거나 수사 필요성이 제기됐을 때 제대로 수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과거사위 조사 과정에서 검찰의 부실 수사 정황과 의혹이 상당 부분 드러났지만 공소시효가 지났거나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사건의 실체를 더 증명해내지 못한 것이 많았다.

김 전 차관 사건은 검찰이 별도 수사단을 발족해 전면 재수사한 끝에 김 전 차관의 뇌물 수수 혐의를 찾아 재판에 넘겼는데도 의심은 정리되지 않고 있다. 의혹의 시작점이었던 성범죄 의혹이나 당시 연루된 다른 고위 권력자들의 관련성 등은 역시나 공소시효나 증거 부족 등으로 제대로 수사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다. 청와대와 경찰 사이에 당시 상황을 덮으려는 시도가 있었던 정황은 상당 부분 드러난 것 같으면서도 결국 누가 잘못했는지는 밝히지 못했다.

이번 수사를 놓고도 사건의 피해자에 해당하는 경찰 관계자나 여성 등이 자신의 진술을 검찰이 덮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또 다른 진실 공방까지 벌어졌다. 검찰로서도 오랜 시간이 지난 사건을 이보다 더 어떻게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답답함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막강한 수사 권한을 갖고 있는 검찰이 이런 일에서 느끼는 답답함이 검찰의 기소하지 않을 권한을 그저 믿고 받아들여야 하는 국민의 답답함에는 미치지 못할 게 분명하다. 이번 사건을 통해 검찰이 느꼈을 억울함과 답답함을 돌이켜 보면, 기소해야 할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았을 때 그 불신을 뒤늦게 회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깨달을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검찰이 스스로를, 또 권력자를 수사하지 않아도 견제받지 않는 현재의 구조 자체를 바꿔야만 빠져나올 수 있는 불신의 늪을 확인한 것일 수도 있다. “말로만 검찰을 비판하지 말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라도 빨리 만들어서 맡겼으면 좋겠다”던 어느 검찰 고위관계자의 토로가 진심이기를 바란다.

조민영 사회부 차장 mymin@kmib.co.kr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