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문록] 당신의 후각 사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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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문록] 당신의 후각 사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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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개다. 사람들이 이렇게 말할 때는 흔히 두 가지 경우다. 먹을 것 앞에서 갑자기 친근하게 구는 개의 식욕본능에 실소할 때, 그리고 냄새로 무언가를 찾아내는 후각 능력에 감탄할 때. 알다시피 개는 후각이 뛰어난 동물이다. 사람의 콧속에는 냄새를 맡을 수 있는 후각수용체 단백질이 600만개 정도인데, 개는 이 단백질을 2억~2억5000개쯤 갖고 있다고 한다. 냄새를 처리해서 뇌로 보내는 후각망울의 크기나 코의 구조 등을 다 종합해보면 사람보다 개가 최소한 1만배 혹은 100만배, 심지어 1000만배쯤 더 후각이 뛰어나다고 한다. 사람들의 연구 결과는 편차가 하도 커서 어떤 수치가 맞는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사람의 후각은 개는 물론 고양이와도 비교되지 않을 만큼 둔감하다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후각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언젠가 사람들에게 자신의 오감 중에 잃어도 좋은 감각이 있다면 무엇을 꼽겠는가 물었단다. 1위로 꼽힌 것이 바로 후각이었다. 사람들이 코보다 눈을 더 믿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현명한 짐승들은 아무리 시력이 좋다고 해도 결코 시각에만 의지하지 않는다. 시각은 우리를 속이기도 하지만 후각은 속임수를 쓰지 않는다. 사람들이 대대손손 시각예술이나 청각예술을 발전시켜 오면서도 후각예술에는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는 것도 아쉬운 일이다. 정작 더 드넓고 무궁무진하며 신비하고 독창적인 세계는 후각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건데. 만약 개들의 예술사를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한다면 당연히 후각예술이 첫 장을 차지하게 될 거다. 사람들은 향수를 만들거나 요리할 때가 아니면 후각이 특별히 사용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건 후각이 발달하지 못해서 생각까지 짧아졌기 때문이다. 세상 어디에도 ‘냄새의 도서관’이 없는 것은 사람들의 문명이 충분히 발전하지 못했다는 증거다.

냄새를 통해 세상 만물을 파악하고 기억하려는 존재에 대한 호기심, 늘 킁킁거리며 후각예술적 영감에 사로잡힌 개들의 노즈워크는 게으른 예술가들에게도 본보기가 될 만하다. 눈에 보이는 외모, 입으로 지어낸 말을 통해서만 상대방을 파악하려는 사람들과 달리 우리 같은 개들은 서로의 엉덩이에 코를 들이대고 몸 냄새를 맡는 것으로 충분하다. 시간은 짧지만 모든 감각을 집중해서 서로를 탐색한다. 냄새만으로도 개들은 처음 만난 상대가 어떤 존재인지 단박에 알 수 있다. 얼굴이나 학벌, 재산 같은 조건을 보지 않고도 존재 그 자체를 이해하는 능력, 사람들이 ‘동물적 감각’이라고 부르는 직관도 시각이나 청각보다는 오히려 후각을 통해서 가능하다.

그토록 중요한 감각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잃거나 잊고 산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토록 중요한 감각을 잘못 사용하고 있다는 거다. 최근 국제적인 찬사를 받고 있는 영화 ‘기생충’에는 냄새에 관한 대사가 나온다. ‘오래된 무말랭이에서 나는 냄새’ ‘지하철 타는 사람들에게서 나는 냄새’… 뭐라고 표현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좋지 않은’ 그 냄새에 부잣집 부부는 코를 막는다. 옷과 말과 서류로 출신 대학과 직업과 신분을 속여도 어쩐지 속일 수 없는 냄새. 개나 고양이에 비해 턱없이 후각 능력이 둔감한 사람들은 자신의 후각을 자신과 다른 계급의 사람들을 구별해내는 데 쓴다. 다른 오감보다 원초적이면서도 월등한 감각인 후각 사용법의 가장 나쁜 예를 보여준 영화. ‘봉테일’이라는 찬사를 받는 그 훌륭한 영화는 반려견인 내게는 그렇게 기억될 것이다.

최현주 (카피라이터·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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