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준 칼럼] 외로움도 병인 양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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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원준 칼럼] 외로움도 병인 양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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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하게 죽는 고독사, 어쩌면 고독해서 죽는 것일지 모른다
우울한 감정이 우울증 됐듯이 외로움도 질병 영역에 접근 중
‘외로움 장관’ 신설한 영국처럼 정책적 대응이 필요해졌다
‘외로움 조례’ ‘1인 가구 조례’ 같은 시도가 더 확산되기를


그녀의 나이는 스물여섯이었고 부산 수영구 원룸에서 살았다. 배에 복수가 차서 서너 달째 일을 못했으니 그만큼 월세가 밀려 있었다. 2013년 10월 혼자 살던 방에서 홀로 숨진 채 발견됐다. 병사로 기록됐는데 경찰은 사망 시점을 2주 전으로 추정했다. 연고가 없는 탓에 혼자가 된 경위는 알 길이 없지만 혼자 지낸 삶이 어땠을지는 가늠해볼 수 있었다. 몇몇 단서가 휴대전화에서 나왔다. 석 달 전 메모 애플리케이션에 ‘온몸이 다시 붉어지고 거의 열흘을 혼자서 소주로… 헛배가 차올라 며칠을 굶으니 잠이라도 푹 잤으면… 잊자, 서러워 말자’고 적었다. 숨졌다고 추정된 날에는 ‘○○ 구매시 10만원 할인!’이라는 스팸문자에 ‘--’라고 답장을 보냈다. 슬픈 눈을 뜻하는 줄 두 개가 마지막 흔적이 됐다. 아마 누군가와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전화를 걸거나 힘들다는 문자라도 보내려고 연락처와 통화기록을 뒤적였을 텐데, 1주일 전 도착해 있던 스팸이 유일한 선택지였던 모양이다.

병마가 나이를 고려해주는 건 아니지만 스물여섯의 육체라면 서너 달 만에 죽음에 이를 만큼 호락호락하진 않았을 것이다. 진료기록은 동네 내과에 한두 번 갔던 게 전부였고 메모처럼 혼자서 먹지도 자지도 못하며 그 시간을 보냈다. 왜 그리 급속하고 무기력하게, 제대로 저항도 못해보고 무너졌을까. 사회신경과학이란 영역을 개척한 심리학자 존 카치오포는 평생 외로움을 연구했다. 고립과 고독이 우리의 심리뿐 아니라 신체에도 치명적 영향을 직접 미친다는 걸 실험으로 입증했다. 면역체계를 망가뜨리고 스트레스를 증폭시키고 심혈관기능을 저해하며 심할 경우 내장기관을 파괴한다고 했다. 그의 이론을 토대로 진행된 여러 학자의 연구에서 외로움은 담배를 하루 15개비씩 꾸준히 피우는 것만큼 해롭고, 비만보다 몸을 더 많이 손상시키며, 평균수명을 15년쯤 단축시킨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스팸문자에 답장을 보낸 젊은 여성의 사인도 이런 외로움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녀의 고독사는 고독하게 죽은 것이 아니라 고독해서 죽은 것일지 모른다.

고독이 죽음의 형태를 넘어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먼저 주목한 건 영국이었다. 지난해 ‘외로움부 장관’을 내각에 신설했다. 고립감에 신음하는 영국인이 900만명이나 된다는 조사 결과를 제시하며 외로움을 사회적 전염병으로 규정했고 사람들의 유대감을 높여줄 정책 개발에 나섰다. 외로움을 전염병이라 한 것은 상징적인 표현일 텐데,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기쁨, 슬픔, 미움, 불안함, 무서움 같은 사람의 감정 가운데 이미 질병코드를 가진 것이 적지 않다. 우울함은 우울증이 됐고, 불안함은 공황장애, 무서움은 광장공포증 등의 병명으로 치료를 받는다. 외로움이란 감정도 연구가 진척돼 인과관계와 치명성을 더 규명하면 질병의 지위를 갖게 될지 모른다. 임상심리학자 엘렌 헨드릭슨은 벌써 ‘사회적 고립 증후군’이란 병명까지 제시했다. 최근 여배우의 돌연한 사망을 의아해하던 사람들은 “우울증이 있었다”는 설명에 비로소 납득했는데, 머지않은 미래에 누군가의 죽음을 설명하면서 “그 사람, 외로웠대” 하게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만성적 외로움이 질병의 영역에 접근하자 학자들은 치료제 개발에 뛰어들었다. 심리학에 뇌과학을 접목한 카치오포의 목표는 사람들이 외로울 때 먹을 약을 만드는 거였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뒤 동료이자 아내인 스테파니 카치오포 시카고대학 교수가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프레그네놀론이란 신경스테로이드 물질이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다. 지속적인 외로움을 느끼는 이들에게 2017년부터 투약하며 관찰해온 실험이 지난달 마무리됐다. 개발에 성공한다면 외로움이 몸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약이 될 것이다.

약국에 가서 “요즘 외로운데 약 좀 주세요” 하는 세상이 된다니 갑자기 외로워지는데, 한국도 그런 약이 필요한 사회가 돼가고 있다. 매년 1000건 안팎의 고독사가 발생한다. 1인 가구는 600만에 육박해 전체의 30%를 차지하는 보편적 형태가 됐다. 결혼이 줄어들고 고령화가 심화되면서 혼자 사는 기간 역시 계속 길어지고 있다. 갈수록 벌어지는 양극화와 치열해지는 경쟁에 군중 속 고독의 무게도 늘어만 간다. 그 때문인지 정신질환과 결부된 끔찍한 범죄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

지난주에도 부산에서 56세와 70세 남성의 고독사 시신이 잇따라 발견됐다. 그래서 시작한 글인데 관련 정보를 찾다 보니 외로움 약이라는 디스토피아적 전망에 이르고 말았다. 고독사의 본질적 문제는 고독한 죽음보다 그에 필연적으로 선행하는 고독한 삶에 있으며 그 고독은 개인의 감정을 넘어 사회적 질병이 돼가고 있다. 다행히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이를 정책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부산시는 최근 ‘외로움 조례’를 제정했고 서울시는 ‘1인 가구 조례’를 시행 중이다. 외로움을 약으로 견디는 세상이 되지 않도록 이런 시도가 확산되고 효과를 발휘하기를 기대한다.

태원준 논설위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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