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풍경화] 지나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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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풍경화] 지나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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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빵돌이’인 데다 동네 여러 분식집 김밥 맛을 눈감고 구별하는 ‘김밥성애자’이고 늘 과자와 음료를 끼고 사는 내가 편의점 점주가 되어 있는 오늘의 풍경은 그야말로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선물한 격, 운명의 실수다. 물론 카페 사장이 온종일 커피만 마실 수는 없는 노릇이고 옷 가게 주인이라고 사시사철 좋은 옷만 입고 다니는 것도 아니지만 편의점은 사정이 좀 다르다. 선택의 폭이 넓―거든.

종종 들르는 손님이야 편의점 물건이 다 그 물건 아니냐 생각하시겠지만 편의점은 스스로 끊임없이 변한다. 매월 100가지 훌쩍 넘는 신상품이 쏟아진다. 점주들은 그 가운데 우리 편의점에 어울릴 상품을 골라 들여놓는다. 대체 어떤 상품을 들여야 할지 눈앞이 빙글빙글 어지러울 지경인데, 그럴 때 선택의 기준이 하나 있으니 장려금! 새로운 상품을 주문하면 일종의 판촉비용을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지원해준다. 일단 장려금이 붙어 있는 신상품을 주문하고, 판매 양상을 보아 우리 편의점의 새 식구로 받아들일지, “죄송합니다, 저희랑 맞지 않는 것 같네요”하며 돌려보낼지 결정하게 된다.

하지만 사나흘 판매량을 보고 어찌 감히 상품의 미래를 판단하겠나. 가장 좋은 방법은 편의점주의 오래된 촉감으로 직접 체험해보는 것이다. 신상품이 나오면 나는 일단 뜯고 씹고 맛본다. 먹고 싶어 그런 것이 결코 아니다. 직업적 사명감 때문이라고, 가게의 무궁한 번영을 위해서라고, 나는 그렇게 합리화의 주문을 왼다.

최근 우리 편의점에는 ‘참치회’가 신상품으로 들어왔다. 이젠 편의점에서 참치회도 구입할 수 있는 세상이다. 어차피 냉동 상태로 유통되는 참치회를 지금껏 편의점에서는 왜 팔지 않았단 말인가. 어는점 때문이란다. 참치는 영하 50도 내외에서 보관해야 색깔이 변하지 않는데 편의점 냉동고는 영하 20도 수준이다. 그 온도에서 신선도를 유지하는 방법을 개발했다니 기특한지고. 출시 기념으로 2+1행사까지 붙었다.

이런 신상품 먹거리가 편의점에 들어오는 날, 나는 진열된 상품을 애정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주여, 지나가게 해주소서. 유통기한이 빨리 지나가게 해주소서. 아무렴, 유통기한이 지나야 내게 소중한 시식의 기회가 온다.

지난 몇 년간 편의점 업계에는 우울한 소식만 이어졌다. 주위에 편의점이 정말 많긴 많다. 살아남기 위한 편의점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그래서일까, 최근에는 겉보다 속을 채우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신상품도 유독 많이 쏟아지고, 각종 서비스도 부쩍 느는 중이다. 자궁경부암 진단키트를 편의점에서 판매하고, 시중가격의 절반인 편의점 택배가 등장했으며, 세탁물을 편의점에 맡기고 찾아가는 서비스까지 도입됐다.

같은 업종에서 어려운 형편에 놓인 분들을 생각하며 기도하는 한편, 지금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으로 나는 오늘도 편의점 근무복을 단정히 갖춰 입는다. 신상품을 고르고, 조금이라도 다른 편의점을 만들기 위해 조용히 노력하는 중이다.

‘달달함’이 그리운 세상인지 올여름은 ‘흑당’이 대세다. 극한의 단맛을 강조하는 음료가 크게 인기를 끌고 있다. 기회를 놓칠세라 편의점 프랜차이즈도 잇따라 흑당이 들어간 신상품을 내어놓는 중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나는 우리 편의점 냉장고에 가지런히 앉아 있는 신상품 흑당샌드위치를 사심 가득한 눈빛으로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 주여, 이 또한 지나가게 도와주소서.

봉달호(작가·편의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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